<특별기고> 친일과 대한민국 / 최진석 (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

안상일 기자 | 입력 : 2020/09/01 [01:57]

 

   < 특별기고 >

 

                                             친일과 대한민국

                                                            최진석 (서강대학교 철학과명예교수)

조국과 민족의 번영을 꿈꾸는 나는 작년 7월에 발표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이렇게 시작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즉 국가의 명칭을 100년이나 사용하고도 새삼스럽게 다시 '국가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매우 복잡한 일이다. 아니 내게만 갑자기 복잡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대한민국의 지성계나 정치계를 둘러볼 때, 나만 혼자서 심사가 복잡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미쳤는지 스스로 의심이 된다.” 글이 발표된 후, 내 고향 전라도 땅에서 더 많이 냉소적인 눈빛을 받는 것은 매우 괴롭고 위축되는 일이다.

 

지금 다시 글을 쓰면서 나는 ‘국가란 무엇인가’를 쓸 때보다 더 괴롭다. 위축되어 쭈그러진 심장을 다시 펴야 하니 자기 검열도 심해지고 표정을 감춘 채 곁눈질하던 얼굴도 더 많이 떠오른다. 솔직히 이제는 내가 정말 미친 것 같다. 가까이서 곁눈질하던 그 눈빛들에게 이해를 구하려던 심정도 서운한 마음마저도 이제는 사라졌다. 내가 미쳤을 것이라는 확신이 강해질수록 되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 눈빛들에게 말한다. “내가 미쳐서 미안하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고 75주년이 되는 날, 대한민국은 친일과 반일 논쟁의 아비규환 속으로 다시 회귀하였다. 논의의 주제가 그 시대를 결정한다. 우리는 75주년을 기념하면서 75년 전으로 돌아갔다. 권력을 가진 주도세력이 이 회귀를 강력히 원하니 어쩔 수 없다.

 

주도세력에 속한 한 국회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프랑스는 ‘민족 반역자에게는 공소시효가 없다’고 하면서 나치 부역자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처벌했고, 민족 반역자를 철저히 처벌하고 나서 프랑스는 똘레랑스, 관용의 나라, 문화예술의 강국이 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광복절 75주년에 프랑스의 민족정기 바로 세우기의 기풍을 생각한다고도 했다. 우리는 친일 청산을 말하면서 곧잘 프랑스의 예를 들곤 한다.

지금 경영되고 있는 근대형 국가를 민족국가, 즉 ‘nation-state’라고 하는데, 이때 ‘nation’은 ‘국민’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민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래서 민족국가를 국민국가라고도 부른다. ‘민족’ 개념은 좀 복잡하다. 민족국가(국민국가)는 중세의 자연경제가 붕괴하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민족을 전제로 성립된 국가 시스템인데, 여기서는 혈연적 종족 의식이 하나의 중요한 밑바탕이기도 하지만, 근대 국가를 국민국가라고 하면서 거기에 민족국가라는 표현을 연결시킬 때의 ‘민족’은 혈연적 종족 의식보다는 국민 간의 정서적 일체감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이런 진화는 프랑스 혁명 시기에 국민을 법률적인 맥락으로 정의하면서 시작되었다.

 

혁명기 프랑스 국민의회는 1789년 8월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유로우며 평등한 권리를 지닌다”는 문장을 제1조로 하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을 발표한다. 이때의 ‘국민’은 종족이나 혈연적 의미에서의 ‘민족’보다는 종족이나 혈연적 의미가 떨어져 나간 ‘시민’이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1791년에 처음으로 헌법이 제정된 후, 프랑스는 왕권신수설을 버리고 입헌군주국으로 등장한다.

 

국왕도 국가를 대표하는 하나의 ‘관료’로 규정된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민족’은 종족과 혈연을 기본으로 하는 정서적 일체감보다는 하나의 법률을 공유하는 공동체로서의 일체감을 가진 ‘국민’(시민)을 의미하게 된다. 방금 말한 공동체는 우리의 가슴 속에 들어있는 ‘민족’이 아니라 ‘국가’다. 이렇게 하여 근대적 의미의 국가를 국민국가와 민족국가 두 가지로 표현해도 둘 사이에서 의미가 어긋나지 않는다. 그 후로 민족은 정서적 일체감이 중시되는 관념이나 상상의 공동체가 되었고, 국가는 하나의 법률적 지배를 받아들이는 공동체가 되었다.

프랑스와 달리 독일에서는 국민국가의 성립이 100년 정도 늦다. 1871년에야 독일제국이 성립된다. 게다가 훨씬 전부터 독일은 혁명을 거친 프랑스에 점령당하자 프랑스 혁명의 성취였던 ‘시민-민족주의’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종족-민족주의’를 강화한다. ‘민족’ 개념에서 ‘종족’이라는 의미를 탈각시키지 못한 것이다. 사실 프랑스는 혁명을 통해 근대국가를 세웠기 때문에 영토나 정치적인 측면에서 하나 된 통일 국가를 이루기 쉬웠다.

 

그러나 독일은 전쟁으로 통일을 했기 때문에 프로이센이나 합스부르크 제국 등 적지 않은 영주국들이 감정적으로 하나가 되지 못한 채 비교적 엉성하게 합쳐졌다. 독일 입장에서는 이 정치적 불일치 상태를 해결할 강력한 끈끈이가 필요했고, 독일은 그것을 종족에서 찾았다. 이는 훗날 히틀러의 나치즘이 태동하는 씨앗으로 작용한다. 독일의 ‘종족-민족주의’는 일본으로 전파되었고, 한국은 일본을 통해 이 경향을 강하게 받았다. 한국이 이 경향을 강하게 받은 것은 식민지 상황이 큰 이유였다.

 

당시 국가가 없던 우리는 일본에 저항하는 공동체적 동질감을 국가에서 찾을 수는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종족’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지금도 우리에게는 ‘민족’으로 남아 있다. 이런 연유로 우리의 민족주의는 프랑스식의 ‘시민-민족주의’라기 보다는 독일식의 ‘종족-민족주의’에 가깝다. 독일의 나치즘 극복 방향도 사실은 ‘종족-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시민-민족주의’로 이동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시민-민족주의’로 나아가지 못하고 ‘종족-민족주의’에 계속 머문다면, 히틀러를 무조건 추종하거나 중국 문화 혁명기의 홍위병들이 발산했던 것과 비슷한 집단 광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정치적 인식의 중심을 서둘러 민족에서 국가로 이동해야 한다. ‘민족’을 중심에 두는 한 법에 근거하기보다는 감성적 선동에 근거하는 경향을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는 친일 문제만 나오면, 항상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되었던 프랑스가 국권을 재탈환하고 난 후, 독일 치하에서 독일에 부역했던 반역자들을 공소시효 없이 끈질기게 추적하고 처단하는 것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프랑스-독일’ 관계를 ‘한국-일본’ 관계에 바로 대입시키지만, 여기에는 좀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할 문제가 있다.

 

욕부터 안 하고 자세히 살펴보자고 하니까 어떤 분들은 벌써 불쾌감이 치밀어 오를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친일 문제를 아무리 차분하게 보려 해도 그것이 적대적 분노를 표출하려는 것이 아니면 바로 ‘토착 왜구’로 의심부터 하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다소 불쾌감을 생산하더라도 이제는 좀 이성적으로 살펴야 할 때라고 본다. 그래야 국가나 민족의 미래라는 큰 틀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집단이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독점 이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문제가 특정 집단이 정치적으로 독점 이용하는 굴레에 갇히는 한, 극일의 길은 점점 멀어지고, 국가의 효율적 전진은 어려워진다. 나를 친일 매국노로 보지 않기 바란다.

 

나는 일본을 한 번은 이겨봐야 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이다. 올해는 아직 못 갔지만, 몇 년 전부터, 1년에 최소한 한 번은 정한론(征韓論)을 쓴 요시다 쇼인의 묘를 찾아간다. 내 의지가 약해지지 않게 하려는 뜻이다. 내 제자에게는 요시다 쇼인을 공부시켰다.

 

졸저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은 독자들은 내가 일본에 대한 복수심을 쓴 대목을 기억할 것이다. 최소한 나 정도로 끈질기게 극일의 의지를 다져보지 않았으면, 내게 그저 큰 목소리만 가지고 적개심을 표하지 않기 바란다. 나는 적어도 입으로는 친일 척결을 말하면서, 공식적인 행사에서까지 일본의 ‘독수리 5형제’ 복장을 하는 수준은 아니다.

‘프랑스-독일’ 관계는 ‘한국-일본’ 관계보다는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계에 더 가깝다. 프랑스와 독일은 연합국과 동맹국으로 나뉘어 전쟁했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전쟁이었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드골이 영국으로 건너가 처칠의 도움으로 ‘자유 프랑스’를 결성한다. 망명정부인 셈이다.

 

『어린 왕자』로 잘 알려진 생텍쥐페리도 바로 이 자유 프랑스 비행대 소속 비행 대원이었다. 프랑스 내에서는 ‘레지스탕스’가 독일에 저항했다. 연합국의 진격으로 ‘레지스탕스’와 ‘자유 프랑스’는 독일군을 몰아내고 프랑스를 되찾는다. 프랑스는 국권을 회복한 후, 반역자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처형함으로써 프랑스의 정신을 더욱 강하게 세운다.

 

이때 보통은 별 의식 없이 민족정기를 세웠다고 말하지만, ‘시민-민족주의’를 가진 프랑스가 반역자들을 처형하여 세운 것은 ‘민족정기’라기 보다는 ‘국가 정기’이다. ‘국가 정기’가 바로 ‘국가 정신’이나 ‘국가의 정통성’이다. 철든 그들에게는 ‘민족정기’와 ‘국가 정기’가 하나지만, 철이 덜 든 우리의 일부 세력들은 아직도 ‘민족정기’와 ‘국가 정기’를 일치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가 정기’를 포기하고 ‘종족-민족주의’적인 ‘민족정기’를 택하려는 중세적 감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습 침략으로 전쟁에 돌입한다. 프랑스와 독일이 연합국과 동맹국으로 나뉘어 싸웠듯이 우리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뉘어 싸웠다. 대한민국은 공산주의 세력의 강공으로 부산까지 밀렸지만, 자본주의 연합 세력의 반격으로 다시 서울을 수복하였다. 프랑스가 독일에 부역한 반역자들을 처벌한 것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면, 우리는 인민군 점령 시에 인민군에 부역했던 사람들을 반역자로 규정하고 끝까지 추적 처벌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국민, 영토, 주권, 그리고 정부로 구성된 정상적인 국가로 본다면, 이 말이 이상하지 않아야 한다. 대한민국을 국가로 보지 않는다면, 이 말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도 허용되는 일이다. 국군이 평양까지 진격해서 점령하고 있는 동안 국군에 부역한 사람들이 있다면, 인민군은 그들을 반역자로 규정하고 처벌할 것이다. 프랑스를 모델로 삼으려면, 인민군에 부역한 자들을 반역자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것부터 주장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대한민국을 하나의 정상 국가로 보는 관점이 분명할 때만 가능하다. 대한민국을 하나의 정상 국가로 보지 않는 심리와 정서를 가진 사람이라면,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국가와 민족 사이에서 근대 국가의 관점을 분명히 가진 사람은 이해할 것이고, 민족과 국가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린 지 오래거나 중심을 잡기 싫은 사람은 매우 불쾌하거나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 불쾌한 정서를 이겨낼 정도의 지적 사고력이 없으면, 나를 미친놈이라 할 수도 있다.

프랑스가 반역자를 끝까지 추적하여 처벌할 수 있었던 힘은 직접적인 저항을 했던 당사자 세력이 그대로 유지되어 재탈환하는 일까지 했기 때문이다. 주권을 잃었던 당사자가 주권을 재탈환하여 권력자로 복귀한 것이다. 고작 4년이었다. 4년 동안 프랑스 사람들 가운데는 독일 군인과 사랑에 빠진 여인도 나오고, 독일에 부역한 언론인, 정치인, 학자, 예술가 등등이 수없이 나왔다. 고작 4년의 기간이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그러는지 무의식적으로 그러는지 분명치는 않지만, 넓게 퍼진 착각 비슷한 것이 있다. 프랑스와 독일이 전쟁으로 주권을 먹었다 뺏겼다 한 것처럼 한국과 일본도 그랬던 것인 줄 안다. 그랬으면 오죽 좋았겠는가. 또 적어도 그랬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반쯤 입을 벌린 상태에서 눈만 껌벅이다가 일본의 속국이 되었다.

 

대한 제국도 일본의 국익에 맞는 큰 그림 위에서 일본의 의도에 따라 세워졌다. 청나라와 조선의 주종 관계를 일본과 조선의 주종 관계로 바꾸려는 일본의 의도가 크게 작용하였다. 원구단에서 진행된 대한 제국 고종황제 즉위식은 일본 경찰들이 호위하였다. 일본 경찰의 호위 아래 세워진 대한 제국이라니. 여기에 무슨 국가로서의 배타적 저항 정신이 머리칼만큼이라도 있을 수 있었겠는가. 국가가 무능하면 그 안의 구성원들은 개돼지만큼의 존엄도 갖지 못하는 것이 세상사다.

 

1910년 8월 29일 경술년 국치일은 법적인 요식행위일 뿐, 훨씬 전부터 우리는 국치의 세월을 견디는 슬픈 백성이었다. 상해임시정부가 1919년 4월에 수립된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이 1910년이니, 상해임시정부 수립은 식민 속국이 되고 나서 9년 후의 일이다. ‘자유 프랑스’와 ‘상해임시정부’는 침탈당하는 과정이나 주도권이나 국가 정통성의 계승 문제에서 서로 매우 다르다. 이런 시각을 가진 나를 상해임시정부를 가볍게 본다고 비난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상해 임시정부 청사 독립 역사관’과 ‘일강 김철 선생 기념관’을 가진 함평 사람이다. 식민지가 되고 나서 9년이나 지났는데도 독립의 기상을 잃지 않고 임시정부를 세웠으니 얼마나 위대한가.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상해임시정부를 가볍게 보려 한다는 의심을 사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정도로 비통한 삶을 살았던 조상들에 대해서 100여년 뒤의 사람들이 왜 반역자를 프랑스처럼 처벌하지 않았느냐고 따질 때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깊이를 가져보자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가진 또 하나의 착각 비슷한 것이 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줄 아는 일이다. 미국을 위시한 연합군의 도움이 없었으면, 1945년 8월 15일의 독립도 없었다. 해방은 우리 손으로 우리가 한 것이 아니다. 이 상황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도 똑같다. 프랑스의 해방도 프랑스 단독의 힘만으로 이룬 것은 아니다. 국가의 점령과 해방을 단독으로 한 나라는 아주 오래된 고대 사회 이후에는 거의 없다.

 

프랑스는 연합국 주축세력이었으며, 독일을 향한 군사 활동에서 주도적으로 피를 흘리며 해방을 쟁취했다. 국제 사회에서 전후 처리의 주도권은 누가 피를 더 많이 자발적으로 흘렸느냐를 가지고 결정한다. 해방 후의 정국 주도권은 우리가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왜? 간단하다. 우리는 주도권을 쥘 만큼의 피를 흘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국 주도권은 미국과 소련에 있었다. 이 상황이 훗날 6.25 전쟁까지 이어진다.

 

미국을 조국 분단의 철천지원수라고 하기 전에, 먼저 조국 분단의 철천지원수가 바로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았던 우리 자신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무지하고 무능해서 스스로 지키지 못한 일임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이래야 구차스럽지 않고 당당하다.

 

이때 우리는 강한 국가들끼리 벌이는 놀음을 이겨낼 정도로 강하지 못했다. 일본은 비록 패전국이지만, 강한 국가들과 동등하게 전쟁하다가 패한 나라다. 우리는 그 정도의 역량에 한참 못 미쳤다.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고 흘려야 할 만큼의 피를 흘린 다음에 독립을 쟁취했으면, 친일파도 제대로 척결하고 분단도 없을 수 있었다.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한 것을 대한민국의 문제로만 보면 안 된다. 그때 강대국들끼리 벌이는 국제 질서의 구조를 이겨낼 정도로 우리는 독립적이지 못했다. 북한은 친일파를 척결했는데, 우리만 척결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도 이치상 어불성설이다.

 

북한의 초대 내각이 친일파들로 가득 채워졌던 것을 우리는 다 알지 않은가. 북한 건국세력들 대부분이 항일 무장 단체 출신들이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진실이 아니다. 반면, 대한민국 이승만 정부 초기내각은 대부분 임시정부나 광복군 출신들의 독립 운동가들이었다. 나는 누가 더 친일파를 제대로 척결했는지를 따지려 하지 않는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외세의 간섭 하에 황망하게 국가를 세우면서 친일 세력을 완전히 척결할 수 있는 독립적 구조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룬 해방이 아니니 어쩔 수 없다. 이런 구조를 무시하고 북한은 친일파를 완전히 척결했는데, 대한민국은 친일파를 척결하지 않았다고 먼저 정해놓고 말하면 안 된다. 그리고 그런 슬픈 세월을 산 조상들을 너무 가혹하게 비난하면 안 된다. 어찌 되었건 나라를 갖게 된 것이 어딘가.

착각 비슷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대한민국을 우리 스스로 세운 것으로 믿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우리가 ‘세운 나라’가 아니라, 외부의 도움으로 ‘세워진 나라’였다. 우리가 일제 점령기에 보였던 자발적인 노력과 헌신을 경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국제정세의 큰 틀에서 보면 그렇다는 뜻이다.

 

이 나라를 세워주던 외세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이익을 우리의 그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미국도 그랬고, 소련도 그랬다. 혹시 우리가 힘이 강해 다른 나라를 세우는데 도울 일이 있다면, 우리도 우리가 세워주는 그 나라의 이익이 아니라 최대한 우리의 이익을 고려할 것이다. 이것이 세상사다. 우리에게는 친일 세력 척결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지 몰라도, 소련이나 미국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 우리가 힘이 약해서 벌어진 일이다.

 

75년 후의 후손들이 조상들을 가혹하게 비판만 하기에는 사정이 간단치 않았다. 친일 척결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당시 정치인들의 정치적 인식이나 정치적 태도보다는 국제 질서가 부과한 이겨내기 힘든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우리는 나라를 세웠다. 그것만으로도 가상하다. 나는 이왕 도움을 받아야 하는 초라한 형편에서 소련이 아니라 미국의 도움을 받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 소련에 의지했었다면, 우리는 전체주의적 억압 속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가난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미국에 의지했기 때문에 더 자유롭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북한의 삶보다는 대한민국의 삶이 천만 배 더 좋고 자랑스럽다. 북한에 주눅들 일이 핵무기 말고 무엇이 있는가.

나라도 없이 식민지가 되었다가 외세의 도움으로 나라를 되찾을 때는 수없이 복잡한 모순 속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 모순을 척결할 능력이 없어서 모순을 품은 채 나라를 세웠다. 모순을 품은 채 나라를 세워야 했던 슬픈 백성들끼리 서로 너무 비난하지 말자. 그것도 정당성을 북한에 주고 자신을 온갖 치욕 덩어리로 전락시키며 스스로 너무 자학하지 말자. 그 시절 당시 모순의 냄새도 맡아본 적이 없는 75년 후의 후손들은 너무 가혹하지 말자. 너무 맹렬하지는 말자.

내게는 이런 경험이 있다. 계절도 생각나지 않은 어느 날, 아침과 새벽 사이의 시간에 어머니가 나를 깨우셨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됐을 때다. 가서 아버지를 돕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씀이셨다. 동네에서 좀 떨어진 개천에 나갔더니, 아버지는 한 번도 보이신 적이 없던 표정으로 웅크린 채 개를 손질하고 계셨다. 털은 이미 불로 지져서 말끔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생각이 멈추는 충격을 받았으나, 그 충격을 아버지가 아시면 괴로워하실까 봐 나는 애써 덤덤한 척하면서 도와드리려 하였다.

 

아버지는 그때 내 손을 툭 치시면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셨다. 왜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나왔냐고 힐난하시듯이 어머니를 째려보기도 하셨다. 아버지가 손질한 그 개로 어머니는 탕을 끓이셨고, 나는 우적우적 몇 날을 먹었다. 아버지는 탕에다 밥을 말아 우적우적 먹던 나를 흡족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곤 하셨다.

 

이 장면 속에서 나는 평생을 두고 셰익스피어와 톨스토이는 물론이고, 팔만대장경과 성경의 질긴 공격을 받는다. 여기에 ─적어도 내게는─ 동물 보호나 윤리적 삶이나 환경 보호나 아동 교육이나 부모의 자세나 하는 것들은 끼어들지 못한다. 아버지에게는 허약한 애에게 개고기를 먹이면 좋다는 친구 말만이 종교의 교리처럼 자리 잡았을 뿐이다. 내게는 무표정하게 개를 다루시던 아버지의 웅크린 자세만 시 수천 편의 무게로 남았다. 지금은 우리 집 누구도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조선 말기부터 이미 이 땅의 백성들에게는 나라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지 못했다.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이 땅의 ‘열등한’ 백성들은 ‘우월한’ 일본인 밑에서 식민 백성의 설움을 삼켜야 했다. 이 기간이 아무리 적게 잡아도 36년이다. 4년이 아니라 36년이다.

 

사람의 한평생을 보통 한 세대라고 하면서 거기에 30년이라는 시간을 배정한다. 세대에 따라서 사람들은 세계관이나 시대의식이 전혀 달라진다. 매우 다른 사람들로 교체되는 계기가 30년을 단위로 한다는 뜻이다. 36년이라는 시간은 사람을 전혀 다르게 만들어내는 긴 시간이다.

 

백선엽 장군은 1920년생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17년생이다. 국가 없는 백성으로 태어나, 국가의 보호를 받아 본 적도 없고, 국가에 충성하는 법도 모른 채 태어났고 배워본 적도 없다. 인생을 독립적으로 결정해야 할 때를 아무리 일찍 잡아서 15세라고 하더라도, 그 나이 때에 백선엽 장군은 나라가 없어진 지 25년 후이고, 박정희 대통령은 28년 후이다. 독일 점령하에서 4년을 보낸 프랑스 사람들과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시인 서정주는 자신이 한 친일행위에 대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고 하면서, “해방이 그토록 빨리 올 줄은 몰랐다”고 고백했다. 나는 이 고백을 당시 식민지 백성이 천형처럼 가지고 있는 불안한 심리를 솔직하게 드러낸 것으로 본다. 이는 정치적이나 기능적인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는 훨씬 더 깊고 복잡한 인간적인 문제이다. 물론, 천 번 만 번 말해도 부족할 것은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다.

 

그분들은 인간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각성에 이르렀다. 이는 아무리 찬미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했는데, 왜 너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느냐, 왜 너는 독립군을 토벌하러 다녔냐고 간단히 묻기에는 우리의 사정이 프랑스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른 아침 개천가에서 개를 다루시던 웅크린 자세의 내 아버지를 동물 보호나 아동 교육이나 윤리적 태도 등으로 해석하기에는 그 안에 너무 많은 인간의 문제가 얽혀 있다.

얼마 전, 광복회장의 친일 척결 주장은 매우 근본적이고 강렬하다. 나도 그 정도의 분명함이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갈수록 생각만 많아지고 조심스럽다. 내가 친일분자나 토착 왜구라서 그럴까? 갈수록 비겁해지고 교활해져서 그럴까? 점점 지적으로 얄팍해져서 그럴까? 나도 미쳐가는 마당이라 알 길이 없다.

 

서정주 시인이 말했듯이 그의 친일 행각의 출발은 사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는 자기변명에 기초하고 있을 것이다. 서정주 시인은 1915년생이니, 여기다 철이 들 정도의 나이 15살을 보태면 그도 ‘살기 위한 일’을 할 나이에는 다른 나라의 식민 백성으로 산 지 20년이나 지난 다음이다. 국가의 사랑을 받아본 기억 속의 4년이 아니라, 국가의 사랑을 받아본 기억도 없던 20년이다.

 

광복회장도 박정희의 공화당에 ‘자발적’으로 공채시험을 봐서 들어갔고, 전두환이 주인 노릇을 하던 민주정의당에서 조직국장을 지내고, ‘토착 왜구’들이 득실댄다던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그도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튼튼한 국가의 보호를 받던 사람도 ‘생계’ 때문에 자발적으로 ‘토착 왜구’들 틈 속으로 들어갔다. ‘생계’가 해결되고 나서 이제는 친일 인사들의 ‘파묘’까지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국가가 없어진 지 2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아 본 기억도 없는 한 사람이 살 궁리를 한다면 대체 어떠했을까? 여기에는 친일, 반일의 문제보다 훨씬 더 깊고 복잡하고 존재론적인 ‘인간의 문제’가 있다. 이미 미친 마당에 한 번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광복회장 류의 사람이 식민지가 된 지 20년이나 지난 시점에 있다고 치자. 독립운동의 길을 갔을까, 친일파의 길을 갔을까? 광복회장 류의 사람이 독립 운동하러 집을 나서는 풍경이 정말로 그려지는가? 국가 자체에 대한 기억이 없고, 국가의 보호를 받아 본 기억도 없이 식민지가 된 지 이미 20년이나 흐른 시점이라면, 그래도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결심은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고백한다.

 

아마 열심히 공부해서 식민지 구조 속에서나마 더 나은 직업을 찾으려 노력했을 수 있다. 15살 나이에 철들어보니 식민지가 된 지 20년이나 지났다면, 나는 죽어도 간도 특설대 장교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정말 용서하기 바란다.

 

나는 노력하여 흥남시청의 농업계장이라도 하려고 했을 것 같다. 혹시 사주팔자가 혼이 빠져 민족의식은 고려하지 않고 관운만 크게 뚫어 놓았다면, 창씨개명을 한 후 중추원 참의까지 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 헌병의 높은 자리를 탐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절대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그때도 지금 정도의 민족적 정의감이 충분히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나보다 공부도 더 잘하고, 높은 자리에도 쑥쑥 올라간 광복회장도 ‘생계’ 때문에 이러다 저러다 하는데, 나같이 심약한 미물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대한민국은 민족적으로 친일한 적이 있는 사람들까지도 섞여서 세워졌다. 친일을 다 털지 못한 것은 친일파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스스로 반민족 친일을 처단할 구조적인 역량을 가지지 못했고, 우리가 주도권을 움켜쥐고 나라를 세우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자신이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 데에 주도적인 역량을 갖지 못하면, 외부의 간섭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프랑스가 독일을 물리치고 나서 반역자들을 처단할 수 있었던 것은 영토를 회복하고 주도권을 행사할 주도적인 역량을 스스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했는데, 우리 조상들은 왜 하지 못했는가라고 가혹할 정도로까지 밀어붙이기에는 상황이 서로 많이 달랐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남한이나 북한 모두 똑같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이 친일 청산을 잘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만, 그들도 초대 내각은 친일파들로 채우고 있지 않은가. 북한은 친일을 청산했고, 남한은 청산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느 쪽이 되었건 당시의 구조적인 억압을 이겨낼 힘이 없었을 뿐이다.

 

지금처럼 친일 청산을 우리만 못한 것으로 보고, 현미경을 들이대서 친일의 물 한 방울까지 씻어내려면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교육, 법률, 도시, 종교, 학문 시스템의 뿌리부터 다 허물어야 한다. 서울역도 파괴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만들어 사용한 행정시스템도 다 부셔야 한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서울역을 기반으로 해서 세계에서 가장 편리한 KTX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서울역을 일제의 잔재로도 보지만, 거기서 우리의 역동과 도약도 본다. 우리는 이 두 가지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슬픈 역사를 가졌다. 긴 세월이 흘렀다. 도대체 어디가 종착역일까? 종착역에 도달했는가 싶으면, 시발역으로 돌아가 다시 열차를 타야 한단다. 시발역까지 다시 죽어라 돌아가는 중이다.

여기에 사유의 창을 열고 내다봐야만 보이는 문제 하나가 있다. 우리는 친일의 문제를 민족이나 국가 차원에서 객관적으로 다루는 일에 이미 실패하고 있다. 이 주제는 크고 엄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특정 진영의 정치 아젠다로 전락했다. 정치의 한 집단을 친일로 규정하고, 그 규정을 근거로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통성을 부정하려 한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과 사악함이 있다.

 

광복회장은 2018년 12월 8일 향린교회에서 열린 <김정은 위원장님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위인 맞이 환영단’ 공개 세미나>에서 축사를 했다. 여기서 두 개의 주제 발표가 있었는데, 하나는 “김정은 위원장님의 서울 방문을 뜨겁게 환영하는 이유는?”이고, 다른 하나는 “왜 우리는 김정은 위원장님을 위인으로 보게 되었는가?”이다. 광복회장은 축사를 통해 “박근혜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김정은을 좋아하는 사람이 훨씬 나아 보인다”랄지, “박근혜보다는 김정은이 더 낫다”고 발언한다.

 

이것을 사상의 자유나 통일을 위한 기능적 선택으로 포장하겠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학이거나 자기 비하이거나 지성의 파멸일 뿐이다. 이런 아무것도 아닌 일이 매우 수준 높은 정치 행위인 양 둔갑하여 권력 핵심부나 거기에 가까운 지성인들 사이에서 좌충우돌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우리는 지식 생산국이었던 적이 없다. 지식 수입국으로 살고 있다. 이제는 지식 생산국 단계로 도약해야 하는 것이 사명이다. 지식 수입국으로 오래 살았다는 것은 사유가 독립적이지 않고 종속적이며 집단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도 진영의 논리에 빠져 사는 이유다.

 

종속적이고 집단적인 사고에 빠지면, 중국 명나라 때의 사상가 이지(李贄)의 말처럼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 대니 그저 따라 짖어 댈 뿐, 왜 그렇게 짖어 댔는지 까닭을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웃을 뿐이다. 국가의 일을 진영의 논리로 다루니, 국가는 표류할 수밖에 없다. 종속적이고 집단적 사고에 매몰되어 있으면, 어떤 문제를 독립적인 사고 능력으로 집요하게 다루지 못하고 바로 반대편을 선택해버리거나 논리를 임의대로 사용하는 특징을 보인다.

자본주의에서 문제를 발견했으면 거기서 독립적인 사고를 집요하게 펼쳐야 하는데, 그런 사고력이 없으니 바로 공산주의로 넘어가 버린다. 박정희에게서 문제가 발견되었으면 박정희를 붙들고 늘어져야 하는데, 붙들고 늘어질 정도의 사고 근력이 없으니 바로 김일성에게 넘어가 버린다. 박근혜가 미우면 바로 김정은을 좋아 해버리는 단순성도 같은 이치다.

 

미국을 비판하다가 중국으로 넘어가 버리는 일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비판은 공산주의로의 전향이 아니라 자본주의 수정으로 귀결되어야 하고, 박정희 비판은 김일성 추종이 아니라 박정희 수정으로 진화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이런 정도의 사고 능력이 갖춰져 있지 않다.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내면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적극적으로 긍정하지 않으니, 모든 일을 대한민국 안에서 다루고 해결하지 못하고, 대한민국을 가볍게 지나쳐 버린다. 마침내 반정부와 반국가도 구별 못 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것도 사상의 자유 문제로 포장하겠지만, 사실은 지성이나 사유 능력이 망가진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인 내게는 김일성보다는 박정희가 훨씬 낫고, 김정일보다는 이명박이 훨씬 더 낫고, 김정은보다는 박근혜가 훨씬 낫다. 김일성보다는 박정희가 더 위인이고, 김정일보다는 김대중이 더 위인이었듯이, 김정은보다는 문재인이 더 위인이어야 되지 않겠는가?

사유가 독립적으로 훈련되지 못하고 종속적이면 집단적 사고를 하거나 논리를 임의로 사용한다. 얼마 전까지,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의 지성계에는 희귀한 논리가 있다. 소위 학문을 연구한다는 학자들까지도 일부는 북한을 대할 때 이 논리를 구사했는데, 어떻게 ‘이론’과 ‘논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혹은 감춘 채) 학자의 지위를 누리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 우리는 ‘논리’, ‘이론’, ‘법’ 등에 대한 기초 개념도 아직 닦이지 않은 상태인 것은 분명하다. 졸문 “본 것과 믿는 것 사이에서”에 실었던 문단을 그대로 다시 옮긴다. “한동안 북한에 대한 인식 방법으로 ‘내재적 접근법’이라는 이론이 상당한 환영을 받으며 유행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을 그들이 설명하는 가치와 이념에 따라 있는 그대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북한을 북한의 시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의 대접을 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론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최소한의 미덕은 객관성과 보편성이다. 주관적인 감각을 벗어나야 하며, 어떤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매우 넓은 범위 어디에나 치우침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북한을 대할 때만 ‘내재적 접근법’을 사용하였다. 우리 자신, 즉 대한민국을 대할 때는 ‘내재적 접근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에게는 인류 보편의 가치 기준을 적용하였다.

 

북한을 이해할 때는 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기반으로 해서 하고, 우리를 이해하려 할 때는 ‘인권’, ‘민주’ 등의 보편적인 잣대를 가지고 했다. 편파적이나 임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이론이 아니다. 이론이 아닌 것을 이론처럼 사용하던 그런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고, 그것을 변경하지 못하는 지금의 시간들도 있다.

 

이론을 이론으로 다루는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았다는 지식인들도 이 ‘내재적 접근법’을 편파적으로 사용하고, 정작 자신의 ‘내재적 상황’에는 한없이 자학적이었으면서도 매우 냉철한 지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으로 포장하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아직 ‘내재적 접근법’을 이론으로 사용하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허위적 이론에 기댔던 사람들이 지금 정권의 주도세력이 되어 있다. 한나 아렌트가 “사유하지 않는 천박함이 모든 악의 근원이다”고 한 말의 의미 정도는 다 알면서 왜 그러는가.

우리는 ‘민족’ 개념에 기대 살다가 타력으로 해방이 되고, 내가 주도한 전투로 내 피를 흘려가며 자력으로 국가를 세워 본 경험이 없어서 국가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적 인식이 그렇게 강하지 못하다. 대통령부터 민족과 국가 사이에서 중심을 못 잡고, 자신이 민족의 지도자인지 대한민국 군 통수권자인지 분간을 못한다. 민족은 정서적이고 감정적이며 상상이 지배하는 하나의 관념이다.

 

국가는 철저히 법률의 지배를 받는 현실적 구조다. 내가 참여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대통령이 입장할 때 대통령의 입장을 알리거나 선언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대통령께서 입장하십니다!”라고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반드시 붙이는 것으로 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상 국가가 아니다. 국가(정부) 기관의 이름은 일반명사를 그대로 쓰지 않고 반드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앞세운다. 역사박물관도 그냥 역사박물관이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다. 재향군인회도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헌법도 대한민국 헌법, 법원도 대한민국 법원, 국회도 대한민국 국회, 육군도 대한민국 육군, 해병대도 대한민국 해병대, 공군도 해군도 다 앞에는 대한민국이 붙는다. 광복회도 대한민국 광복회여야 한다.

 

홈페이지에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붙이지 않고 있는 기관은 광복회뿐이다. 왜 대한민국 광복회여야 하는가. 간단하다. 한민족이 낸 기부금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 납부한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정서적 민족 관념이 법률적 구조를 지배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 현충원도 대한민국 현충원이다.

 

김원봉을 아무리 존경하고 좋아해도 ─ 나도 좋아한다 ─ 대한민국에 적대적인 경력이 있으면 국립 현충원에 모시려고 시도하면 안 된다. 이것은 격정적인 정서나 심리로 따질 일이 아니라, 차분하고 이성적인 법률로 따질 일이다. 대한민국의 일은 철저히 대한민국의 일로만 따지는 배타적인 태도가 ‘국가’에는 당연하다.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는지 아니면 대한민국과 싸웠는지를 따지는 것 외에 다른 기준이 끼어들면 안 된다.

민족정기라는 정서적 관념으로 국가의 정기나 정통성을 흔들려고 하면 안 된다. 국가의 정통성이나 정기로는 민족의 정기도 살릴 수 있지만, 민족의 정기로는 국가의 정통성이나 정기를 살릴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민족에게는 군대도 없고 조세 수입도 없지만, 국가에는 군대도 있고 조세 수입도 있기 때문이다. 졸문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함께 읽어주기 바란다. 거기에도 이런 내용을 담았다. 국가가 민족 문제를 해결하지, 민족이 국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통일도 감정과 정서를 극복한 지적 인식을 바탕으로 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통일은 국제법과 국내법을 토대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해결할 일이지, 민족 감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과 남한 어디에 더 민족의 정통성이 있는지가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북한이 친일을 제대로 청산해서 민족의 정통성이 거기에 있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북한은 친일을 청산하고, 대한민국은 친일을 청산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도 큰 틀에서는 사실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을 가장 중요하게 다룰 필요는 없다.

지금은 민족정기를 살리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정기와 정통성을 걱정해야 할 때이다. 김원봉을 국립 현충원에 묻으려고 눈치를 살피는 것보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으로 희생된 군인들을 제대로 보살피고 있는지를 정성껏 살피는 것이 더 시급하다. 현충일에 천안함 유족들이 초대받지 못하고, 아직도 천안함이 누구의 소행인지를 대통령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대통령은 민족의 지도자가 아니라 영광스런 대한민국의 군 통수권자임을 다시 분명히 새겨야 할 것이다.

신생 독립국으로 출발해서 원조로 연명하다가 지금은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다. GDP 세계 12위 국가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나라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 치욕의 역사로 보려 하는가.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가. 이런 성취를 이룬 선배들에게 굴욕감을 주면서까지 얻으려 하는 것은 무엇인가. 축적이 없는 성취는 있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축적 과정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최소한 자괴감이 들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슬픈 백성들이었다. 서로 너무 가혹하지 말자.

경술국치 110주년, 2020년 8월29일에 함평 호접몽가(蝴蝶夢家)에서 탈고하다.

최진석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 중국 북경대학교 철학박사
저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 <경계에 흐르다>,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인간이 그리는 무늬>,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등
 

* 이 글은  대한민국 국민이 가져야 할 국민 정체성을 깨우쳐주는 최진석 교수의 놀라운 글이다 . 계간지 철학과현실 2020년 가을호 (통권 126호)에서 전재한 것이다 (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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