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 광주사태 보고서> 언론이 국민에게 보여주지않는 보고서 /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

안상일 기자 | 입력 : 2020/05/19 [20:14]

 

 

언론이 국민에게 보여주지 않는 1980년 6월 3일자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의 광주사태 보고서 영문 원문과 국문 번역문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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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LAW COMMAND (MLC) ISSUED ON MAY 31 A "COMPREHENSIVE REPORT" ON THE KWANGJU INSURRECTIDN (REF). SEOUL DAILIES MAY 31 CARRIED SUMMARIES PLUS THE FULL 5,000 -WORD TEXT. HEADLINES FEATURED OFFICIAL DEATH-TOLL FIGURES: 144 CIVILIANS, 22 SOLDIERS, AND 4 POLICEMEN KILLED.

THRUST OF THE REPORT WAS THAT RIOT WAS PROFESSIONALLY-INSTIGATED AND ATTAINED PROPORTIONS OF "MASS HYSTERIA"

IT ALLEGED THAT RIOT WAS SUBDUED WITH MINIMAL BLOODSHED, BECAUSE OF RESOURCEFULNESS AND SELF-RESTRAINT OF ROK ARMY TROOPS.

계엄사령부는 5월 31일 광주 반란군에 대한 "종합 보고서"를 발표했다.

서울의 일간지는 일제히 5천 단어로 된 전문과 요약을 보도했다.

특집기사로 보도된 공식 사망자 현황은
민간인 144명, 군인 22명, 그리고 경찰 4명이다.

기사에서 강조된 점은 폭동이 전문적으로 선동되어 "군중 흥분 소동"을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폭동은 육군의 충분한 병력자원과 군인들의 자제력에 힘입어 최소한의 유혈로 진압된 것으로 평가되었다.

THF RIOT WAS THE WORK OF COMMUNIST AGENTS AND THE FOLLOWERS OF KIM DAE-JUNG (M-R: KIM TAE CHUNG), ACCORDING TO THE MLC ACCOUNT. TWO REINSTATED STUDENTS (I.E. FORMER POLITICAL OFFENDERS PERMITTED TO RETURN TO COLLEGE THE BEGINNING OF THE PRESENT SEMESTER), ONE EACH FROM CHOSUN AND CHONNAM UNIVERSITIES AND BOTH PAID KDJ LOYALISTS, ARE NAMED AS THE PRINCIPAL AGITATORS BEHIND THE ORIGINAL STUDENT PROTESTS.

폭동은 공산주의자인 간첩과 김대중의 추종자들이 일으킨 것이었다.

이번 학생소요를 배후에서 조종한 주동자로 지목된 사람은 반체제 선동가로서 징계를 받았다가 이번 학기에 복학이 허용된 조선대와 전남대의 복학생 2명
으로서 모두 김대중의 열성 지지자였다.

THE FIRST ACT OF THESE ANO OTHER "INSTIGATORS" WAS TO FAN THESE STUDENT PROTESTS INTO A GENERAL INSURRECTION.
THIS THEY DID BY FABRICATING AND SPREADING RUMORS. THE OFFICIAL ACCOUNT ADMITS THAT "YOUNG SOLDIERS... DEALT ROUGHLY WITH SOME STUDENTS," BUT SAYS THAT THE ATROCITY RUMORS WHICH THEN QUICKLY SPREAD WERE "INCOMPREHENSIBLE TO MEN OF REASON. " NEVERTHELESS THE RUMORS APPARENTLY CARRIED ENOUGH FORCE TO DRAW IN THE MASS OF CITIZENS. AND, WITHIN 24 HOURS, "MASS HYSTERIA PREVAILED" IN KWANGJU.

이 두 복학생과 여타 "선동자"들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이 학생소요를 전체적 시민반란으로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유언비어를 조작 및 유포하는 방법을 통하여 이를 실행하였다.
공식 수사에서 확인된 유언비어로는 "젊은 병사들이 학생들을 거칠게 다루었다"는 것이었으며, 당시 가장 신속히 유포되었던 악성 유언비어는 "인간이라고는 부를수 없는 짓"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유언비어들은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군중들에게 유포되어 매우 큰 악영향을 미쳤으며, 광주에는 불과 24시간 이내에 "군중 흥분 소동이 만연하게" 되었다.

THE INVOLVEMENT OF THE CITY'S MASSES IS NOT DENIED, AND VIGNETTES OF THE RIOT LEADERS--"A MOTHER-OF-PEARL CARVER, CHIEF OF THE STRIKE FORCE, A TRUCK DRIVER, CHIEF OF THE SITUATION ROOM, ETC. -- CONVEY RATHER DRAMATICALLY THE SENSE OF A PLEBEIAN UPRISING. THERE IS EVEN MENTION OF A 33-YEAR-OLD ARMY RESERVE CAPTAIN CONDUCTING AD HOC SQUAD-TACTICS TRAINING IN THE YMCA. THERE IS A DISTINCTION DRAWN HOWEVER BETWEEN THE HIGHLY SUGGESTIBLE CITIZENRY AND THE "HARD CORE" OF "IMPURE ELEMENTS" WHO INSISTED ON A BLOODY FIGHT TO THE END.

시민 군중의 개입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폭동 주동자들에게 이용당한 사람들은 "자개공, 노조위원장, 트럭운전사, 상황실장" 등등의 직업을 가진 자들이었다는 사실을 통해 이 폭동이 하층민들의 반란인것 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YMCA에서는 특수전 훈련을 담당하던 33세의 예비역 육군 대위에 대한 진술도 있다.
한눈에 알수있는 일반 군중과는 달리 끝까지 유혈 전투를 주장하던 "불순 분자"인 "핵심 세력"이 별도로 존재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CREDIT FOR CASUALTIES BEING NO HIGHER THAN THEY WERE IN KWANGJU IS GIVEN ENTIRELY TO THE TROOPS, WHO "RESTRAINED THEMSELVcS FROM USING THEIR RIGHT OF SELF DEFENSE." THEIR RESOURCEFULNESS IS PRAISED AS WELL: AWARE THAT RIOTERS HAD MINED THE PROVINCIAL GOVERNMENT BUILDING. "MARTIAL LAW TROOPS INFILTRATED... THE BUILDING AND DEFUSED THE CHARGES, " THUS PREVENTING A MASSIVE BLAST WITH MANY CASUALTIES WHEN KWANGJU WAS RETAKEN. FINALLY, SECURITY FORCES ARE CREDITED WITH GREAT GENEROSITY OF SPIRIT IN R'ELEASING WITH ADMONITIONS 1,010 OF THE 1,740 PERSONS TAKEN INTO CUSTODY DURING AND AFTER THE INSURRECTION.

광주에서의 사망자 수가 예상보다 적었던 것은 전적으로 자위권 발동을 끝까지 자제한 계엄군의 덕분이었다.
군의 충분한 병력 배치도 또한 칭찬받아야 한다.
폭도들은 도청에 대량의 폭약을 설치하였는데, 계엄군은 목숨을 걸고 도청에 잠입하여 폭약의 뇌관을 제거함으로써 도청 재진입 작전시 대형 폭발 사고를 방지할수 있었다.
끝으로 보안군은 폭동기간 중에 체포한 1,740명 중 1,010명을 훈방함으로써 관용정신을 베풀어 인정을 받았다.

THE REACTION OF KOREANS WE HAVE SPOKEN TO, INCLUDING THOSE NORMALLY CONSERVATIVE AND PRO GOVERNMENT HAS BEEN SKEPTICAL.
THE OFFICIAL REPORT DENIES THE TALES OF TROOP ATROCITIES ON MAY 18 WHICH BY NOW MOST KOREANS HAVE HEARD AND SEEM TO BELIEVE.

THE REPORT DOES NOT REALLY ACCOUNT FOR THE PHENOMENON OF THE CITIZENS' JOINING THE STUDENTS; LURID RUMORS ARE A FACT OF LIFE IN KOREA AND THEY DO NOT NORMALlY RESULT IN MASS HYSTERICS.

THE REPORT GIVES A CASUALTY COUNT WHICH MOST TO WHOM WE TALK CONSIDER VERY LOW.
IT CONTAINS SOME INTERESTING AND COLORFUL DETAILS, SUCH AS THE INFILTRATORS' DISARMING THE EXPLOSIVES.
BUT IT IS NOT LIKELY TO GAIN WIDESPREAD ACCEPTANCE AS THE LAST WORD ON KWANGJU. GLEYSTEEN

우리가 접촉한 한국인들은 보수적이고 친정부적인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공식보고서에는 계엄군의 잔혹행위에 대하여 부정하고 있지만 현재는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있고 또 믿는것 같다.
보고서는 실제로 시민들이 학생들과 합류하는 현상에 대하여 해명하지 않고있다.
끔찍한 유언비어들이 한국인들에게는 사실이 되었으나 군중 흥분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보고서의 희생자 수는 매우 적은 수라고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있다.
이 보고서는 또 계엄군이 도청에 잠입하여 폭약을 해체한 사실 등 흥미롭고 화려한 기록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이 광주사태의 중요한 마지막 언급으로서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 같다.

글라이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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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人必讀)
1980年의 光州 5.18 관련 美國政府가 40년만에 기밀문서 해제로 밝혀진 眞實 

소생이 받은 동영상에서 오늘 매우 귀중한 그리고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1980년5월18일, 光州에서 일어난 5.18 폭동에 대해, 

당시, 서울의 美國大使館이 本國정부에 보고한 電文내용이 40년만에 미국정부가 기밀문서를 해제하여 공개되었다.

거기서 밝혀진 眞實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임이 밝혀졌다. 즉, 폭동을 누가 일으켰느냐가 핵심이다.

폭동이 당시 軍部의 폭압적인 진압때문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고 밝혀졌다.

Professionally, 즉 직업적 전문성 있게,  당시 북한첩자들과 김대중추종자들이 일으켰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韓國軍은, 최소한(Minimal)의 출혈(=희생)으로, 폭동을 진압해서 진정시켰다고 밝히고 있다.

놀라운 것은, 光州 5.18폭동은, 金大中 추종자와 북한 간첩들에 의해, professionally 하게 선동되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시민들에 의한 자발적인 무슨 民主化운동같은 것이 일어난것이 아니었다는 뜻을 내포한 電文이 공개된 것이다.

나는, 美國政府가 절묘한 Timing을 골라, 5.18의 날 直前에 공개한 저의가 분명하 있다고 느낀다,

지금 문재인정권이 5.18진상조사 그리고 기총소사 등에 관한, 光州地法의 재판등을 통해 크게, 당시 軍部가 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을 강력 진압했다는 것을 부각시키려고 지금 노심초사, 혈안이 되어있다. 그러나, 美國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기밀문서헤제를 통해서 발표한 것이라고 본다. 

먼저, 폭동은, 김대중 추종자들과 북한 간첩들에 의해 전문적으로 선동촉발한것이라고 明文으로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국내언론은, 이제까지 김대중정권때부터 써먹은 것, 즉 軍部의 폭압적진압에 저항한 시민들의 民主化운동이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5.18의 진상과 실체를, 앞서 말한 북한첩자들과 김대중 추종자들이 선동해서 만들어 내서 촉발되었다는 사실을, 일체 보도하지 않고 있다.

지금, 국내언론이, 5.18 관련 진실보도에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단 한줄 써서 알리지 않고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단순히 미국정부가 40년만에 비밀문서를 공개했다고만 짤막히 보도하는데 그치고 있다. 크게 유감이다. 놀라운 진실이 밝혀졌는 데도 말이다.

이제부터는,  광주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를 이유나 필요가 모두 없어졌다고 나는 본다. 김대중이가 집권하자마자, 자기추종세력에게, 5.18특별법을 제정, 촉촉히 국민혈세로 보상하는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5.18은 결코 민주화운동이 절대 아니라고 본다, 김대중이란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이 지금까지 나라의 재정을 파먹고 뜯어먹고 있다고 나는 본다. 슬픈 일이다.

지금부터는 그것을 뜯어고쳐야 한다!.미국정부에 의해 5.18의 진실이 이제서야 밝혀진 것, 그나마 다행이리고 생각한다.  

2020-05-17, jgchoi作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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